개여울 > 강촌일기
 
조성욱   Hit : 46, Date : 2020/07/14 20:58
나이가 드니 추억도 맛있다.



텃밭 가장자리에 아무렇게나 뿌려두었던 열무 씨가 소복하게 싹을 틔웠다.
소나기가 그친 날의 점심나절 뜬금없이 돋는 입맛을 맞추러  밖에 나가기도 그렇고 해서
열무비빔밥을 해 먹기로 했다.
이럴 땐 보리밥이 제격이지만 전문식당이라면 모를까 요즘 집에서 보리밥을 접하기가 쉬운가?
된장찌개와 새콤달콤한 무생채에 고추장도 볶아 놓고 호박잎 쪄서 강된장 올려먹는 격식을 차렸으면
좋으련만
갑작스런 결정이고 보니 괜한 입맛을 떠올렸다는 자책 외엔 구색이 갖춰진 게 없다.
그냥 넙적한 냉면 그릇에 밥 한 공기 담고 벌레 덜먹은 열무 싹을 한 움큼 뽑아 다듬어 고추장에 참기름 쳐서 냅다 비벼 놓으니
억지나마 그럴듯해 보인다.


어릴 적 시골 할아버지 집에 살 때도 여름이면 열무 비빔밥을 자주 먹었다.
나는 한 끼 굶는 게 나을 만큼 꽁보리밥 일색의 생 열무 비빔밥이 싫었지만
큰 양푼에 퉁퉁한 보리밥, 손으로 뚝뚝 분질러 넣은 열무 줄기, 강된장과 물김치, 풋고추
보리밥에 열무가 있는 건지 열무에 밥알이 붙어있는 건지 분간이 어려운 밥이 싫었다.

장맛비라도 며칠 올라치면 친구들과 마을 앞 냇가와 논 사이 물꼬로 족대를 들고 다니면서
추워서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붕어, 미꾸라지, 송사리 방개 등을 잡아 매운탕을 끓었다.
미꾸라지에 굵은 소금을 뿌려서 뽀송 할 때까지 호박 잎으로 휘저어 씻고 지천에 널린 애호박과
풋고추, 감자에 고춧가루를 풀어 수제비 뚝뚝 떼어 넣고 끓인 매운탕 맛은 별미였다.
나이가 들면 추억도 맛있다고 하던데
전혀 먹음직스럽지 않은 생 열무 비빔밥을 냉면 그릇에 비벼 놓고 보니 옛 추억이 송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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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 2020/07/14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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